광성보는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로, 1658년에 설치됐다. 화도돈대, 오두돈대, 광성돈대와 1874년에 축조된 오두정포대를 관할하였다. 1745년에는 성을 고쳐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어 ‘안해루(按海樓)’라 하였다.
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. 초지진과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에 이른 미군은 상륙하기 전에 포격으로 광성보를 초토화했다. 이미 병인양요 때 광성보에 근무한 바 있던 어재연(魚在淵) 장군은 포격을 피할 안전한 장소에 군사들을 숨겼다가 상륙하는 미군에 맞서 싸웠다. 조선군은 물러서지 않고 분전했으나,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했다.
광성보에는 광성돈대, 어재연·어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쌍충비각,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사 장병들을 모신 신미순의총, 손돌목돈대, 용두돈대 등이 있다.